- STORY
- 01스토리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은 벽지(僻地) 산골 마을이라서 어릴 때 보았던 동네 주변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와 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아는 봄 철 꽃 이름은 기껏해야 개나리,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꽃이나 나무 이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년 봄부터는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꽃들의 이름을 주변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마침내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매화꽃과 꽃사과꽃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팝나무꽃과 이팝나무꽃도 구별할 수 있게 되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 외 금년 들어서 제가 알게 된 꽃들과 나무 이름으로는 팬지, 제비꽃, 쥐똥나무, 사철나무, 메타세콰이어 등입니다. 그리고 제가 사는 아파트 정문 앞에 놓여 있는 꽃이 ‘바베나’인 것도 알게 되었으며, 언젠가 사무실 근처 식당입구에 피어있는 꽃은 ‘군자란’이라는 것을 주인 아주머니로 인해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저희 집 베란다에 놓여있는 제라늄, 천리향, 장미허브, 해피트리, 구아바 등을 포함하면 이래저래 금년 들어 꽃 이름을 참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엊그제는 고향 친구 모임 일로 진짜 꽃에 관한 대가(大家)를 만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고향 친구로서 지금은 꽃과 풀을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 농장을 방문했을 때 주변에 있는 꽃에 대해 제가 관심을 보이며 물어보자, 하나하나 꽃이름을 가르쳐주며 설명해주었습니다. 제가 그날 배운 것들은 ‘꽃창포, 애기똥풀, 작약, 노루오줌, 거북꼬리, 으름, 보리수, 망초, 꽃나리, 백합, 둥굴레, 담쟁이, 머위, 두릅나무, 말발도리, 뚝새풀, 아주가, 팔손이’ 등이었습니다. 친구가 가르쳐주면 열심히 사진 찍고, 글로 이름을 적으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이름 외우기가 어렵다고 하자, 애기똥풀 줄기를 잘라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잘려진 부위에서 나오는 노란 액즙을 보여주면서 이 액즙이 마치 애기똥처럼 생겼다고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모양이 아닌 속성을 보고 붙였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꽃잎을 가리키면서 꽃잎 모양이 무엇을 닮았는지를 물어보기에, 마치 ‘거북이’나 ‘자라’의 등처럼 생겼다고 하자, 이것이 ‘거북꼬리’라는 꽃이라고 하면서 꽃이름 하나하나도 어떤 특성에 맞춰 의미있게 이름 지은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특히 봄철에 새순으로 많이 먹었던 두릅나무와 꽃집에서 꽃으로만 보았던 백합 줄기와 잎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꽃 이름 공부를 하면서도 선생님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하게 된 꽃에 대한 복습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친구의 농장을 방문한 이튿날 고향 친구들과 함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계족산(鷄足山, 429미터)을 다녀왔습니다.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고 해서 계족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산은 황토길로도 유명해진 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 황토길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주변을 돌아보니 산행 초입로 옆으로 산기슭에 아담한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전날 배운 것도 있고 해서 두루두루 꽃들을 살펴보았는데, 대부분 처음 보는 꽃들이었거나 아니면 꽃이름이 적힌 팻말만 있고 그냥 풀들만이 무성하였습니다. 마침 옆에서 함께 있던 꽃 대가인 친구가 한마디 말을 건네옵니다. "팻말만 있고 꽃들이 없는 경우는 자라는 환경이 달라서 꽃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야. 꽃들은 저마다 습기나 공기, 토양 등이 다르면 제대로 자라지 못해” 꽃들에게도 주변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잘 자라는 꽃이 있고,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꽃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사람들이 꽃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예쁜 꽃밭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집에서 화분의 꽃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꽃들마다 저마다의 특성이 있어 성장하기 위한 각자의 환경 또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꽃은 잘자라고 또 어떤 꽃은 시들어 죽어버렸던 이유를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 또한 타고난 저마다의 특성이 서로 달라서, 각자에게 맞는 환경 또한 서로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맹모삼천지교, 강남 8학군 이사, 특목고나 자사고 보내기’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어떤 환경에서 배우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지에 대한 궁금증도 연이어 일어납니다. 결론은 각자가 처한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선택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이어서 꽃밭 구경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오르면서 저는 어제 꽃 대가인 친구에게서 배웠던 꽃들을 찾아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억하여 찾아낸 유일한 꽃은 단 하나 ‘망초’라는 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이름도 모르는 그냥 잡초에 불과했을 그 꽃이 이제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드디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말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를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략”. 얼마전까지 ‘잡초’였던 그 ‘잡풀’의 이름을 알게 되자 마침내 ‘꽃’이 되어 제게로 온 것입니다. 이름은 ‘관심과 구별과 사랑’을 낳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사이에서도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꽃 이름을 배우면서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